[디지털 예술의 세계](1) 디지털 미로에서 마주친 예술

By 2021-06-09업계소식

디지털 세상의 미로 속에서 모퉁이만 돌아도 우리는 박물관의 디지털 전시나 거대한 스크린 속 화려한 영상에 노출되곤 한다. 디지털 물감으로 그려진 영상은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도 하며 우리를 압도하며 시선을 강탈한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 프로젝션 맵핑(Mapping), 홀로그램 같은 용어가 쉽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이는 외부의 보드에서 파도가 치거나 튀어나오는 우주선과 맞부딪히는 순간 우리는 미디어 아트 한가운데 서 있게 된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 창조한 새로운 미디어 세상은 현재 거대한 미로처럼 얽혀 있다.

그간 예술은 고전적 전통과 권력의 절대성을 신봉하는 박물관이라는 공간 속에서 구현돼왔다. 하지만 문명의 기술적 발달은 이제 무덤과도 같은 박물관에서 예술조차 걸어나오게 만들고 있다. 디지털의 혁명 속에 우리라는 감상자가 작품과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디지털 미로의 문을 여는 열쇠는 우리 자신이다. 디지털 아트, 미디어 아트의 시작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는 시점이다.

지금 우리 눈앞에서 디지털이라는 물감으로 창조된 디지털 아트는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내 눈앞에서 펼쳐진다. 길을 가다 마주친 파도와 우주선에서 우리는 걸음을 멈춘다. 아니 그것을 보려고 일부러 그곳을 찾고 기다리고 감탄한다. 단순히 이것들을 상업적 목적으로 치장해놓은 상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마르피 스튜디오의 디지털 미로

예술이 굳어진 몸을 일으켜 의족과 의수를 달고 우리 앞으로 걸어오게 된 것이다. 비단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그들이 소장한 작품들에 팔과 다리를 달아준다. 돋보기로 보아도 잘 보이지 않던 소장품들이 우리 앞에서 디지털의 힘을 빌려 확대되고 강조되며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해준다. 그리고 디지털의 힘을 빌리는 것을 넘어 관람객 스스로가 예술작품과 한몸이 되는 시절이 오게 된다.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미디어는 비로소 완성의 순간을 맞는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 마르피 스튜디오(Marpi Studio)와 팀랩(teamLab)이 창조한 디지털 미로 속에서 통로를 찾아가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르피 스튜디오는 폴란드 출신 작가 마르피를 중심으로 디자이너, 음악가, 디지털 엔지니어, 테크니션 등이 협업해 소통형 미디어아트를 만들고 있는 팀이다. 이들이 창조한 디지털 세상은 사용자와의 쌍방향 반응(interactiveness)이 강조되는 작품들로 우리들의 데이터가 작품을 구성하는 물감과 같은 요소가 된다.

이제까지 편리성을 위해 존재했던 디지털 세상에서 사운드, 제스처, 텍스처 등이 디지털과 반응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생명과 세상으로 창조되며 우리를 작품제작에 함께할 팀원으로 끌어들인다.

디지털 아트의 다른 이정표는 개인의 예술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간을 채우는 디지털 아트는 영상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프로그래밍 작업과 하드웨어 장치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한사람의 아티스트가 만들어내기는 상당히 힘들고 많은 분야에서 전문성이 요구된다. 서울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디지털 아트그룹 ‘팀랩’만 해도 다양한 국적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컴퓨터그래픽스(CG) 애니메이터, 수학자, 건축가, 웹디자이너, 그래픽디자이너, 에디터 등) 400여명이 협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초기술자(Ultra-technologists)라 칭할 만큼 예술과 과학, 기술의 영역 간의 균형 잡힌 조합을 추구하고 있다. 수년간 이들이 지속적으로 발표해온 엄청난 규모의 디지털 워크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강렬한 시각적 경험은 고도화된 팀 작업을 통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팀랩, 디지털 아트의 전형

팀랩의 작품 중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실재하는 공간이지만 디지털 기술이 적용된 공원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탈바꿈되며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해 작품을 완성해간다. 우리가 움직이며 마주하는 순간은 단지 우리의 움직임에 의해 생성되는 공간으로, 이전에도 앞으로도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동작과 아트워크가 거의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디지털 아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팀랩은 지금까지 뉴욕 페이스갤러리, 런던 사치갤러리, 파리 메종오브제, 오스트리아 프리아르스일렉트로니카 2014, 실리콘밸리 페이스아트플러스테크놀로지, 이스탄불 보루산현대미술관, 싱가포르 아트사이언스뮤지엄, 방콕 센트럴월드 등 세계 각지에서 미디어 전시를 개최했다. 이들은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광고, 과학, 기술과 연관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 세상의 미로 속에서 모퉁이만 돌아도 우리는 박물관의 디지털 전시나 거대한 스크린 속 화려한 영상에 노출되곤 한다. 디지털 물감으로 그려진 영상은 우리의 움직임에 반응하기도 하며 우리를 압도하며 시선을 강탈한다. 심지어 우리가 원치 않는 순간에도 시선을 압도하듯 다가오기까지 한다. 더욱이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 스스로가 이미 그 거리, 공간 속 풍경의 작품의 요소가 돼버린다. 이렇게 예술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이 경이로운 순간들을 상상이나 해본 적이 있었던가?

디지털상영관이라 해서 몇 번의 클릭만으로 내가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전시장을 둘러보고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코로나19로 2020년 예정됐던 박물관이나 갤러리의 기획 전시를 비롯해 대규모의 아트페어와 전시들이 부분적으로 비대면으로 대체된 것처럼 기술은 박물관이나 전시장 같은 공간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개인의 공간에서 디지털의 형태로 작품을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마르피 스튜디오와 팀랩의 디지털 아트는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그 기원으로 한다. 이들은 디지털 물감에 인간의 창의성과 인간의 반응에 더해 이제까지 보지 못한 디지털 세상을 구현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신 앞에 배달돼온 마술상자를 각자 편한 방식으로 즐겨보자. 반품은 거절이다. 이미 우리는 미로의 중앙에서 디지털 아트의 한 부분이 됐고, 우리의 몫은 무엇을 선택하느냐 단지 그것뿐이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인식하면 디지털 아트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허지영 아테니빌 아트디렉터 장인선 아트스토리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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